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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생각에 대한 생각

생각이라는 낱말을 한자 말 ‘생각(生覺)’에서 온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뜻밖에 많은 것 같은데, 사실은 본디부터 우리 토박이말이었다. 학자들의 설명을 빌리면, 우리말의 깊은 뜻에 관심이 없던 시절, 한자와 한문에 얼까지 빼앗긴 사람들이 그렇게 적어서 착한 사람들을 속였고, 그런 시절에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아직도 ‘생각’을 한자 말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이라는 뜻에 가까운 한자로는 사(思), 상(想) 등이 있다. 사고(思考), 사색(思索), 사상(思想), 사유(思惟), 사변(思辨), 명상(冥想), 묵상(默想) 등 사(思)를 풀어보면 마음(心) 밭(田)이다. 우리 마음의 바탕을 말한다.   우리 겨레는 사람을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여겼다. 그리고, 사람의 속살인 마음은 ‘느낌’과 ‘생각’과 ‘뜻’의 세 겹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여겼다. 그러니까, 생각은 마음의 한 겹인 것이다. 그러니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명언처럼, 하염없이 흔들리면서도 생각을 해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사라져가는 시대다.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컴퓨터나 인공지능 같은 첨단 기계가 “생각 같은 골치 아픈 건 우리가 다 해드릴 테니, 편안하게 즐기시라!”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그처럼 달콤한 유혹을 뿌리칠 이유가 없다. 그러다 보니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로 현대인이다”라고 선언하고 “나는 검색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스스로를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용건은 되도록 짧고 삼빡하게 처리하고, 긴 글은 아예 읽지 않는다. 눈 아프고 골 때리는 책은 뭐하러 읽나, 편안하게 들으면 되지…. 간단히 검색만 하면 만사 해결인데 뭐하러 사색을 하며 궁상을 떠나? 글쎄? 정말 그런가?   생각은 마음의 한 갈래다. 따지고 보면, 생각은 인간에게 주어진 크나큰 축복이다. 머리 숙여 감사할 일이다. 영어의 ‘Think’라는 낱말이 한 글자 다른 ‘Thank’와 이웃사촌인 것도 의미심장하다. 마치 ‘Present’가 현재라는 뜻이면서 선물이라는 뜻인 것과 비슷하다.   이어령 선생은 생전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젊은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덮어놓고 살지 말라”라고 대답했다. 대충 살지 말고 생각하며 차근차근 소중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덮어놓고 살지 말라”는 말씀은 예술가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작품을 열심히 하되 덮어놓고 하지 말고, 깊이 생각을 거듭하면서 그리고, 쓰고, 연주하고 그래야 마땅하다. 그래야 감상하는 사람도 깊게 생각을 하고 느끼고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보고 듣고 느끼면 된다는 말씀은 그만하시라.   물론, 작업 중에는 생각 따위가 거추장스러운 방해물로 여겨질 때도 있다. 작품에 열중하다 보면, 몰아의 경지에 빠져드는 순간이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귀하고 거룩한 경험이다. “뜻이 앞서면 뜻이 죽는다”는 판소리의 명언을 되새긴다. 그렇다고 해서, 생각이 필요 없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예술작업은 생각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꼭 필요한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상상력이다. 손과 마음을 이어주는 상상력은 예술의 생명인 동시에 우리 인류의 미래를 건강하게 열어줄 원동력이기도 하다. 상상력과 창조력은 사람만이 가진 아름다운 힘이다. 기계가 대신할 수 없다.   유발 하라리는 “인간이라는 동물이 지구 위 최강자가 된 이유가 상상력과 그것을 전달하는 능력, 그를 통해 수만 수억의 개체를 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능력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나저나, 생각하기조차 싫어하는 인간들이 자기 힘으로 멋진 상상의 세계를 펼쳐낼 수 있을까? 남이 해놓으면 마지못해 구경은 하겠지만….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생각 생각 따위 속살인 마음 우리 마음

2024-04-04

[이 아침에]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

한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물 걱정이 컸는데 겨우내 줄기차게 내린 비에 그나마 물 걱정이 사라졌다니 다행이다. 그런데 물 걱정이 없어졌다고 좋아하던 것도 잠시, 이제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걱정이란다. 길이 패고, 땅이 갈라지고, 집이 무너진다고 푸념하는 사람들은 이제는 비가 더 내리면 안 된다고 하면서 또 다른 물 걱정에 마음의 주름만 늘어간다.   가뭄이 한창일 때는 물도 물이지만, 산불로 인한 피해도 컸는데, 비가 자주 내려서 그런지 산불 소식이 뜸하다. 대신 들판을 아름답게 수놓은 야생화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게 피었다는 소식은 수줍음 많은 봄 처녀의 사뿐한 발걸음처럼 우리 마음을 괜스레 설레게 한다.     해마다 야생화가 단골로 피던 곳은 물론이고, 평소에는 풀 한 포기 나지 않던 사막 한복판까지 지난겨울에 내린 비를 깊이 머금고 있다가 봄의 기운을 자양분 삼아 꽃을 피우는 것을 볼라치면 생명의 신비와 끈질김에 마음의 옷깃을 여미게 된다.     봄빛에 얼굴을 활짝 펴고 고개를 꼿꼿이 든 채 황량한 벌판을 형형색색의 꽃동산으로 바꾸어놓았다고 뽐내는 들꽃의 나댐과, 그에 지지 않으려는 듯 온 세상을 초록으로 물들이며 때마침 부는 바람에 맞춰 군무를 추는 봄 풀잎의 공연을 보는데 시 한 편이 떠올랐다. ‘파랗게, 땅 전체를’이라는 제목으로 정현종 시인이 쓴 시다.     시인은 봄이 되자 기지개를 켜며 대지를 뚫고 올라와 세상을 파랗게 뒤덮는 봄 풀잎을 보면서 이렇게 노래했다. ‘파랗게, 땅 전체를 들어 올리는 / 봄 풀잎 / 하늘 무너지지 않게 / 떠받치고 있는 기둥 / 봄 풀잎’     아무 데나 함부로 핀 봄 풀잎이 시인의 상상력을 만나자, 땅을 들어 올리는 힘줄이 되고 하늘이 무너지지 않게 떠받치는 기둥이 되었다. 시인은 지천으로 깔린 봄 풀잎은 흔하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당해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경고한다. 깊이 뿌리를 내린 아름드리나무만 땅을 들어 올리는 힘줄이 아니고, 우람하게 높이 솟은 나무만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 아니라, 작고 연약한 봄 풀잎도 땅을 들어 올리는 힘줄이고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라는 말을 듣는 데 마음이 뜨끔했다.   세상을 떠받치는 기둥이 되라는 부모의 기대는 어름적대다 지나간 세월과 함께 과거에 묻혔기 때문이고, 뿌리 깊은 나무처럼 굳건히 서서 세상의 유익한 사람이 되라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는 교정을 나서자마자 불어닥친 거센 바람에 날아가 버렸고,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말라는 목사님의 간절한 당부는 엄범부렁하다 흘려보낸 세월에 밀려 효험 없는 기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봄바람에 출렁이는 봄 풀잎처럼 하루하루 작은 일에도 휘청대며 사는 보잘것없는 인생을 향해 땅을 들어 올리는 힘줄이 되라고,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으로 살라고 호령한다. 그렇다. 바람에 흔들리는 봄 풀잎처럼 가냘프지만, 서로를 버팀대로 삼고 가지런히 서서 고개를 반듯이 들고 사는 이들이야말로 땅을 들어 올리는 힘줄이요,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라는 시인의 말은 백번 천번 옳다.     이제 우리 차례다. 봄 풀잎처럼 작고 연약하지만, 땅을 들어 올리는 힘줄로 살아야 하는 만만치 않은 존재임을 잊지 말자.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과 같이 나름 괜찮은 존재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세상에 대한 책임을 다하며 살자.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하늘 기둥 정현종 시인 산불 소식 우리 마음

2024-04-03

[삶과 믿음] 정신 수양의 필요

현대인은 끊임없이 정신을 사용하며 살고 있습니다. 직장 혹은 학교에서 하는 우리 대부분의 활동은 정신적 노동이며 육신적 일은 거의 없습니다. 오늘날 경쟁 시대에 우리는 잘 생각하지 않고 잘 판단하지 않으면 세상에서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염려해야 하는 우리의 삶의 모습은 우리가 좌선을 해보면 이가 그대로 우리 마음에 나타납니다. 수많은 망상, 잡념, 제반 걱정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들이 휴식을 취할 때도 TV 혹은 YouTube를 보거나 아니면 무엇을 먹거나 남과 대화를 합니다. 헬스장에서 운동할 때도 무엇을 보거나 들으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 끼 식사 외에 우리가 무엇을 먹을 때는 배가 고파서 먹기보다 우리 마음이 무료하여 어떤 자극(이 경우에는 맛)과 함께하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저울에 서 있지 않을 때 저울 바늘이 0을 가리켜야 정상적 저울입니다. 평상시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현대인의 마음은 고장 난 저울과 같습니다. 우리 마음이 보는 것이건, 듣는 것이건, 먹는 것이건, 어떤 생각이건 어떤 것과 항상 함께하고 싶어 하는 것은 중심을 잃은 우리 마음의 모습입니다.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들로 가득 찬 우리 마음은 항상 피곤합니다. 특히 오늘날 경쟁 사회에서 우리 마음은 진정한 휴식, 참 휴식이 필요합니다.     끊임없이 우리 마음이 생각과 염려, 어떤 정보와 자극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를 부처님은 ‘불타는 마음’으로 비유하셨습니다.   부처님의 유명한 불의 비유 법문(Fire Sermon)에서 “수행자들이여, 이 세상이 불타고 있다. 무엇으로 그리고 어떻게 불타고 있는가? 우리의 눈이 불타고 있고, 우리의 귀와 마음이 불타고 있다. 우리의 귀와 눈 그리고 마음이 욕심과 집착, 화냄과 증오, 무지와 망상으로 불타고 있다. 우리가 집착과 망상을 여의고,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으로 벗어남으로써 우리는 자유로움을 얻는다.” 말씀하셨습니다.   나무와 같은 어떤 두 가지 물질을 계속 비비면 불이 납니다. 눈과 코, 입과 귀 등의 감각기관이 형상, 소리, 냄새, 생각 등의 외경, 즉 감각 대상과 계속 접촉해 있으면 우리 마음에도 불이 납니다. 우리가 완전히 지쳐버렸다거나 정신이 쇠약해지는 등의 현상은 우리 마음에 불이 난 현상이며, 우리 몸과 마음에 생기(生氣)가 말라버린 현상입니다. 우리가 화장실에 가서 변기에 볼일을 보고 물을 내리듯, 우리 인생에서도 마음의 찌꺼기를 정기적으로 내리고 청소를 해야 하는데, 그 방법이 바로 정신수양입니다.     수양(修養)이라는 단어는 닦을 수(修), 기를 양(養)으로 결합하여 있습니다. 창문이 더러워지거나 거울 위에 먼지가 끼면 이를 걸레로 닦아내듯, 우리의 마음에도 잡념과 망상, 근심, 걱정을 잘 닦아내야 합니다. 이가 바로 닦을 수(修)입니다. 기를 양(養)이란 밭에서 어떤 작물을 기르는 것과 흡사합니다. 우리가 땅에 거름 등을 뿌려 영양분을 공급해 주어 작물이 힘 있게 잘 자라게 하듯, 우리 마음에도 영양분을 공급해 마음의 힘을 기르고 충전케 해야 합니다. 작물을 기르고 양성하듯 우리 마음도 그렇게 기르고 양성해야 합니다.   원불교 3대 종법사인 대산 종사님은 정신수양을 “정신은 쓰는 것이요. 수양은 쉬는 것이다”라고 간단히 정의해 주셨습니다. 항상 마음에 불이 나 있는 우리 정신의 근본 문제점은 너무 계속해서 쓰는 것이기에 참으로 잘 쉬는 진정한 휴식이 현대인에게 필요합니다.     마음을 쉬고 충전하는데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잘 쉬고 잘 충전하는 진리적 방법은 명상과 좌선입니다. 명상과 좌선은 메마른 정신에 물을 대는 역할을 하며 우리 마음에 타는 불을 끄게 합니다. 실지 좌선 수행을 할 때 망상이 가라앉고 물기운(水氣)이 올라오면 입에 상쾌한 침이 돌고 두뇌가 상쾌해지는데 이는 바로 우리 몸에서 불기운(火氣)이 내려가고 물기운이 올라오는 증거입니다.   좌선이건 행선이건, 어떤 형태의 명상이라도 좋습니다. 하루에 30분 혹은 1시간 내어서 이를 규칙적으로 행하면 우리 인생이 참으로 달라질 것입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정신 수양 정신 수양 우리 마음 우리 정신

2023-09-14

[삶과 믿음] 수양의 힘

어떤 여자 분이 새 옷을 사서 파티에 참석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새 옷이 예쁘다고 칭찬했습니다. 그런데 친구 한 명이 “그 옷 잘 어울리는데 빨간색이라 좀 뚱뚱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친한 친구이니 그런 말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파티 내내 그 친구의 말이 머리에 맴돌았다고 합니다. 다른 모든 이들이 그 옷이 예쁘다고 칭찬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유명인들이 온라인에 떠도는 악성 댓글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하며 심지어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온라인에 있는 그들에 관한 댓글을 실제로 보면 90% 이상이 좋은 것이고 소수가 부정적인 것이지만 이들은 저절로 부정적인 것에 마음이 쏠려 심리적 고통을 겪는 것입니다. 일반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살면서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동시에 일어나지만 좋지 않은 것에 마음이 따라가기 십상입니다.     육신인 손과 발은 우리가 자유롭게 쓸 수 있지만, 우리 마음은 우리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근육은 많이 사용할수록 강해집니다. 마음은 근육과는 달리 멈추고 휴식할수록 그 힘, 수양력이 강해집니다. 염불, 좌선, 기도 등이 바로 정신을 쉬게 하고 수양력을 높이는 대표적인 정신수양 과목입니다. 마음을 정지하고 뭉치는 시간이 많을수록 수양력이 쌓이고 마음의 힘이 강해져서 여러가지 어려움, 외경에도 흔들리지 않고 인생에서 우리가 안정과 중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육신이 강한 사람이 육신을 마음대로 움직여 쓸 수 있듯, 우리 마음에도 힘이 쌓이면 우리 마음이 순경, 역경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작은 싹은 바람에 뽑히지만 나무가 크면 바람에 쓰러지지 않습니다. 좌선, 염불, 기도 등을 통해 수양공부를 지속하면,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낙도생활을 하는 수양의 힘을 얻게 되는데, 이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기도, 명상 등의 수양 시간을 규칙적으로 가져서 우리 마음을 단련하고 뭉쳐야 가능한 것입니다.     좌선, 염불, 기도 뿐 아니라,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화를 참거나, 헛된 욕심을 참거나, 나쁜 습관을 버리는 등의 인욕 공부를 자꾸하면 마음의 힘이 또한 쌓이게 됩니다.     역경이라는 바람을 잘 이용하면 배를 더욱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게 할 수 있듯, 순경, 역경을 통해 인욕공부를 하여 마음을 단련해서 제 방면으로 수양의 힘을 쌓아야 합니다.   필자의 어머니는 50대 말에 대장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암이 이미 거의 말기인 상태인지라 수술도 할 수 없었고 의사는 6개월 이상 살기 힘들 것이라 말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여러가지를 미리 준비하고 정리해야 된다고 생각했기에 필자는 정직하게 어머니 암 상태를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는 당신 상태의 심각성을 듣고 놀랐지만, 크게 염려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몸이 강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 항암 치료를 하지 않고 그냥 죽는 날까지 즐겁게 감사하게 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식구들은 어머니께서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해 겉으로는 쾌활하게 행동하지만 속으로 많이 염려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큰 염려를 하지 않고 순간순간 낙도 생활하는 것을 점차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특별 수행인은 아니었지만, 교당을 꾸준히 다니면서 조금씩이나마 좌선, 기도, 염불 등을 평생을 하셨으니 결국 마음에 수양력이 쌓여서 말기암이라는 상황에서도 낙도생활을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의사의 말과는 달리 어머니는 항암치료도 전혀 받지 않고 6년 이상을 고통없이 살고 가셨습니다.   헬스장에 한 번 갔다고 근육이 튼튼해 지지 않지만 꾸준히 하면 틀림없는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좌선, 염불, 기도를 하거나 현실생활에서 인욕공부를 하는 것도 꾸준히 하면 참으로 우리 마음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달라져야 습관이 변하고 따라서 인생과 운명이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성취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수양 수양 시간 좌선 기도 우리 마음

2023-07-13

[삶과 믿음] 화가 나는 순간의 명상법

선과 명상이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해마다 명상센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으며 명상에 관한 과학적, 의학적 결과가 많이 발표됨으로써 선과 명상이 종교와 관계없이 차차 일반인에게 생활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수행을 위한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을 위해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기적으로 앉아서 하는 좌선도 주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생활 가운데 어떻게 평화롭고 안정된 마음을 유지하는가가 더욱 주요한 문제가 됩니다. 특히 힘든 상황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선심(禪心)을 유지하는가가 큰 관건입니다. 특히 화가 나고 힘든 상황을 만났을 때 어떻게 마음을 중심을 잃지 않고, 그 순간에 평온을 유지하는가에 대해 원불교 정전 ‘무시선법’에 그 방법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고 경계를 당할 때 바로 선심을 유지할 수 있는 것에 관해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그 ‘방법’을 아는 것이 주요하다고 말합니다.     “이 법이 심히 어려운 것 같으나 닦는 법만 자상히 알고 보면 괭이를 든 농부도 선을 할 수 있고, 망치를 든 공장(工匠)도 선을 할 수 있으며, 주판을 든 점원도 선을 할 수 있고, 정사를 잡은 관리도 선을 할 수 있으며 내왕하면서도 선을 할 수 있고, 집에서도 선을 할 수 있나니 어찌 구차히 처소를 택하며 동정을 말하리오.”   힘든 경계를 당하는 순간 선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대종사께서는 단계적으로 설명하고 소 길들이기에 비유합니다.   “처음으로 선을 닦는 사람은 마음이 마음대로 잘 되지 아니하여 마치 저 소 길들이기와 흡사하나니 잠깐이라도 마음의 고삐를 놓고 보면 곧 도심을 상하게 되니라. 그러므로, 아무리 욕심나는 경계를 대할지라도 끝까지 싸우는 정신을 놓지 아니하고 힘써 행한즉슨 마음이 차차 조숙(調熟)되어 마음을 마음대로 하는 지경에 이르나니, 경계를 대할 때마다 공부할 때가 돌아온 것을 염두에 잊지 말고 항상 끌리고 안 끌리는 대중만 잡아갈지니라.”   잘 길들지 않는 우리 마음의 소를 다스리는 첫 번째 방법은 집심(執心)입니다. 즉 길들지 않은 우리 마음의 소가 아무 데나 가려고 하거나 게으름을 부릴 때  그 ‘마음의 고삐’를 잘 잡고 ‘아무리 욕심나는 경계를 대할지라도 끝까지 싸우는 정신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바로 그 첫 번째 방법입니다.   욕심나는 경계는 다양합니다. 옛 습관에 따라 해야 할 일을 미루려 하거나 습관적으로 남을 판단하려고 하거나, 어떤 상황에서 화를 내려고 하거나 등 우리 마음이 끌리는 욕심 나는 경계는 다양합니다.   대종사 재세시 한 제자가 술을 끊지 못해서 힘들어했습니다. 어느 날 그 제자가 어떤 시골 술집 앞을 지나가는데 그분이 자기 스스로 “이놈, 이놈” 하고 자기를 크게 책망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가 바로 우리의 ‘마음의 고삐’를 추어 잡는 것이여, ‘아무리 욕심나는 경계를 대할지라도 끝까지 싸우는 정신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개를 키울 때 개가 아니해야 할 행동을 할 때 때론 우리가 따끔하게 개를 꾸짖어야 하는 것처럼 -안 그러면 개가 좋지 못한 버릇이 습관화됩니다- 초보 수행자들은 항상 자기 자신을 법에 비추어 꾸짖어 ‘마음의 고삐’를 추어 잡아야 합니다. 어른이 되면 주변에서 진정한 충고를 하는 사람이 차차 사라지기에, 특별한 스승님이 계시지 않는 한, 자기 발전을 위해서 스스로가 자신을 꾸짖고 경책을 하는 것이 아주 주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 성장을 하기가 힘들어집니다.   대종사께서는 특히 “경계를 대할 때마다 공부할 때가 돌아온 것을 염두에 잊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명상법 화가 우리 마음 초보 수행자들 대종사 재세시

2023-02-16

[삶과 믿음] 현대인의 마음공부

옛날 중국의 어떤 동네에 한 약장사가 나타났습니다. 시장에 서서 그는 자기가 파는 환약이 참으로 신령하고 효험이 있고, 이 환약 한 알을 먹고 소원 하나를 말하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약장사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장사는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우선 이 약 한 알을 공짜로 줄터니 소원이 무엇인가를 말해 보라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장사가 잘 되어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고 했고, 장애인 자식을 가진 한 여인은 자기 자식이 정상인이 되는 것이라 했고, 한 청년은 멋진 여자를 만나서 결혼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어떤 꼬마에게 니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꼬마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내 소원은 그 환약을 만드는 방법을 아는 것이에요!” 말했습니다. 환약 한 알에 한 가지 소원만 이루어진다고 하니, 환약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되면 환약을 수 없이 만들어서 모든 소원을 다 이룰 수 있는 것이지요.   실지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소원을 들어주는 신기의 영약이 우리 모두에게 있으니,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이 달라지면 예를 들어 마음을 잘 돌려서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잘 용서하고, 너그러워지고, 보다 긍적적으로 되면 우리 삶이 달라집니다. 우리 마음이 바꾸어져서 나쁜 버릇이 고쳐진다면 예를 들어 더 부지런해 지고, 어떤 분야에서 더욱 지혜로와지거나 삶에서 용기있게 여러 선택을 잘 하게 되면, 우리 주변 환경이 개척되고 우리 인생이 점점 성공적으로 됩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이 결국 우리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세상의 모든 것이 마음이 짓는 것이다.” 이가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이요, 진리의 실상입니다. 우리 마음이 바뀌어 질 때 우리 인생과 운명이 바뀌게 됩니다.   18세기 초까지 유럽에서는 일부 계층 사람들을 제외하고 태반의 사람들이 극히 궁핍한 생활을 했습니다.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면 유토피아가 실현된다고 당시에 생각했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달과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이 이루어지고, 의식주 기본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했을 때 많은 사회과학자들이 유토피아가 곧 실현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선진국에서도 사람들 태반이 유토피아와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우리의 소득이 몇십 배 증가했지만, 사람들의 행복이 몇십 배 증가했을까요? 우울증과 자살율은 더 증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 있어 특히 이 ‘마음공부’가 절실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사람들의 불행의 원인이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없고, 잠 잘 곳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울증, 비교심, 화, 좌절, 경쟁심으로 말미암은 불안과 좌절 등 우리 불행의 태반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수레가 가지 않으면 수레를 채찍질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채찍질해야 한다는 것은 알아도 정작 우리 인생에서 어떤 문제가 있으면 이를 나의 ‘마음’에서 찾기보다 주변 환경에서 찾고 있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21세기의 화두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내 인생과 운명의 주인공이 되는 이 나의 마음을 심각히 한번 생각해 보고 이를 가꾸는 노력을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피부와 몸을 가꾸는 것 처럼….   어떤 산에 두 명의 나무꾼이 있었습니다. 둘 다 체력도 비슷하고 같은 시간 동안 일을 했는데 한 나무꾼이 왜 자기 친구가 항상 더 많은 나무를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어느 날 쉬는 시간에 친구를 보니, 그는 쉬는 시간에 도끼를 가는 것이었습니다. 날이 잘 선 도끼로 일을 하니, 같은 시간에 훨신 많은 나무를 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우리가 하루 24시간 중 어느 정도 시간을 투자해서 선과 명상 혹은 기도를 해서 우리 마음을 맑히고, 경전 공부 등을 통해 우리 마음을 밝히면, 날썬 도끼로 나무를 하는 것 처럼 우리 인생이 더욱 풍요롭고 성공적으로 될 것입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마음공부 현대인 우리 마음 소원 하나 오늘날 선진국

2022-08-18

[삶과 믿음] 정신수양의 필요

탁월한 수학자, 철학자들의 머리는 비싸고 성능 좋은 스포츠카와 같습니다. 스포츠카에 브레이크가 없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차는 반드시 사고가 납니다. 수양 없는 현대인이 불안증, 강박증 등을 가지는 근원은 정신을 잘 쉬지 못하는 생활 습관에 기인하며, 이 같은 인생은  브레이크 없는 차를 모는 것과 같습니다. 쉬임 없는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차 사고가 원불교 경전에는 다음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결국은 가패 신망도 하며, 번민 망상과 분심 초려로 자포자기의 염세증도 나며, 혹은 신경 쇠약자도 되며, 혹은 실진자도 되며, 혹은 극도에 들어가 자살하는 사람까지도 있게 되나니….”   어떤 학자의 통계에 따르면 현대인들의 수많은 근심과 염려 중 40%는 실지 현실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며, 30% 정도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실책 등 생각해도 소용없는 것이며, 20%는 아주 하찮은 것이며, 4% 정도는 날씨, 경제 상황 등 우리가 컨트롤하기 힘든 것에 관한 염려라고 합니다.    시험을 치기 전 긴장, 염려를 안 하겠다고 마음먹는다고 우리 마음이 바로 그렇게 되나요? 그 사람 이제 용서하고 미워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고 우리 마음이 바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 이제는 비교 안 하고 마음 편안히 살겠다고 생각해도 우리 마음이 바로 그렇게 작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신수양으로 마음의 ‘힘’을 길러야 우리 마음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에게 정신은 쉬면 쉴수록 그 힘이 강해집니다. 정신을 멈추어서 잘 쉬게 하고 그 힘을 양성하는 방법이 바로 기도, 좌선, 명상입니다. 이 방법은 마음에 힘을 불어넣는 길이며,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께서 “예로부터 큰 도에 뜻을 둔 사람으로서 선(禪)을 닦지 아니한 일이 없느니라” 하시며 선과 명상의 주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조선 시대 서화담 선생이 어느 날 불교 선방에 가보니 좌선을 하는 스님이 거의 없는 것을 보시고 앞으로 백 년 후에 한국에 명재상, 명장군이 나오지 않겠다고 하고 한탄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염불, 좌선 등의 명상은 우리에게 마음의 힘을 길러 줄뿐더러 그것을 통해 우리는 큰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원불교 3대 종법사였던 대산 종사님께서 “발로도 하는 수양, 눈과 코로 하는 수양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수양을 ‘반달, 반개’로 비유하셨습니다. 보름달보다 반달이 좋고 활짝 핀 꽃보다 반쯤 핀 꽃이 더 좋다는 이 말은 수행인들의 중도(中道) 생활을 말합니다. 우리가 평상시에 보고 듣는 것을 가능한 한 자제하며 육근문(六根門) 즉 우리의 몸과 마음 특히 보고 듣고 이야기하는 것을 잘 조절하라는 말씀입니다.   수양의 힘이 약하면 외부 경계가 올 때, 작고 약한 나무처럼 바람에 금방 꺾입니다. 수양으로서 우리 마음의 힘이 강해지면 심한 경계와 어려움 즉 태풍이 와도 우리 마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수양으로서 우리 마음이 차차 강해지고 성장하는 것을 대산 종사님께서는 얼음 강도에 비유하셨습니다.   “멈추긴 멈추는데 훌렁훌렁하다 꺼진다. 내가 다시 한번 말할 테니까 생각해 보자. 살얼음 같은 수양력인가? 강얼음 같은 수양력인가? 강얼음은 석 달은 가지 한강은 석 달이면 풀리는가? 단단은 하나 그래도 여름이 되면 바그르 한다. 셋째는 철석같은 수양력인가? 쇠와 돌 같은 수양력 그것도 천년만년이 되면 용해되고 분해되어서 없어진다고 그런다.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얻으신 대 정력이 수양력이란 것은 녹으면 다 사하기 때문에 억만년을 가더라도 그 수양력은 없어지지 않는단 말이다. 한번은 물어봐라. 지금 너 수양이 어느 정도인가? 우리 교학과 학생들 하루에 몇 번을 멈추는가? 열번입니다. 교도에게 물어봐라. 40번입니다. 계속해서 천만 경계를 당할 때마다 멈추고 또 멈추면 그것이 쌓이고 싸여 정력이 된다. 또 금년도 신년 법문에 고질적인 몹쓸 습관 하나씩을 떼자 했지! 실행하는 분 있으면 실행하려고 애쓰는 분 있는가? 물어봐라. 그리고 수양을 할 것 같으면 간단히 무엇을 하자는 것이며 무엇을 모으자는 것인가?”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정신수양 수양력 그것 우리 마음 원불교 창시자

2022-03-17

[아름다운 우리말] 참 이야기

참이라는 말은 좋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참이라는 말을 들으면 동시에 거짓이라는 말을 떠올립니다. 그만큼 참은 좋은 것이고 거짓의 반대입니다. 참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가득 차 있는 것과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속이 꽉 찬 것을 좋아합니다. 채소를 고를 때도 속이 꽉 찬 것을 고르지요. 배추도 속이 꽉 찬 게 좋은 거 아닌가요? 사람을 칭찬할 때도 속이 꽉 찼다는 표현을 비유로 듭니다. 속이 찼다는 것은 생각이 깊고 거짓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믿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참에 비해서 거짓은 속이 아니라는 느낌의 말입니다. 거짓의 어원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는 겉과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속이 아니라는 거죠. 겉과 관련된 어휘 중에 거죽, 가죽이 있습니다. 소리가 조금 바뀌면 거품이 되기도 합니다. 모두 속과는 관련이 없고, 차 있는 것과도 거리가 멉니다. 거짓의 느낌을 보여줍니다. 겉모습으로만 사람을 대하고, 거품처럼 텅 비어 있습니다.     참과 반대가 되는 표현으로는 ‘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반대라기보다는 다른 것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표현이 참깨와 들깨가 있습니다. 여기서 나온 참기름과 들기름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참기름과 들기름은 반대의 개념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입니다. 용도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들기름을 써야 할 자리에 참기름을 쓰면 안 됩니다. 참기름이 꼭 나은 것만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참은 가장 기본이 되거나 대표적인 것을 의미할 때도 쓰입니다. 어떤 대상의 이름에 참이라는 말이 붙어 있으면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대표라는 뜻이니 왜 대표가 된 것인지 알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노력이 인지언어학에서도 일어납니다. 머릿속에서 원형이나 대표라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실마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가장 새 다운 새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인간은 어떤 새를 가장 원형으로 생각하고 있을까요? 저는 언어나 문화에 따라 원형에 대한 개념이 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언어마다 문화마다 원형을 찾아가는 과정은 힘들지만 즐거운 과정입니다. 언어학자나 문화학자들이 좋아하는 일입니다. 저는 참이라는 단어에서 실마리를 봅니다. 우리말에서 참은 원형에 다가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새 중에 참이 붙어있는 새는 참새입니다. 저에게 참새는 좀 고민입니다. 이왕 새를 대표하는 것이면 학처럼 멋있는 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참새만큼 우리 가까이에 있는 새도 없겠구나 하는 반성도 합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우리와 함께 지내는 새이기 때문입니다. 함께하는 게 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꽃 중에는 참꽃이 있습니다. 참꽃이라고 하면 금방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을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참꽃은 진달래의 다른 이름입니다. 봄에 우리 마음을 설레게 하였던 그 꽃이 참꽃이네요. 그런데 참꽃에 대해서 공부하다가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참꽃은 원래 먹는 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먹는 꽃의 대표인 진달래가 참꽃이 된 듯싶습니다. 열매만 먹는 게 아니라는 걸 깜빡 잊고 산 것입니다. 잎도, 줄기도, 뿌리도 먹을 수 있는 게 많습니다. 꽃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참꽃입니다.     나무 중에는 참나무가 있습니다. 참나무는 다른 말로 상수리나무라고도 합니다. 열매는 묵을 만들고, 목재는 가구를 만드는 데 쓰이는 훌륭한 나무입니다. 이때 만드는 묵이 바로 도토리묵입니다. 왜 참나무에 참이라는 말을 붙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토리는 우리의 주린 배를 달래주고, 나무로 만든 집은 우리를 보호해 주는 안식처가 됩니다.   참이 또 있겠지요. 참이 붙은 말을 찾아보면서 우리는 선조의 생각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 속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즐겁고 신기한 여행이지요.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이야기 우리 마음 거죽 가죽

2022-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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